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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고딕 문학의 선구자

투더리짱 2025. 2. 1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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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1797-1851) 영국의 작가이자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1818)의 저자, 고딕 호러와 초기 SF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발페르가(1823), 최후의 인간(1826), 『로도어』(1835) 등의 작품을 집필했으며, 사후에는 마틸다가 출간되었습니다.

 

메리 셸리의 어린 시절

 

메리는 1797 8 30,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철학자이자 정치 저술가인 윌리엄 고드윈, 어머니는 여성 교육을 주장한 페미니스트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메리가 태어난 지 11일 만에 산욕열로 사망했고, 아버지가 그녀와 이복언니 패니 임레이를 홀로 키웠습니다.

 

1801, 아버지가 메리 제인 클레어몬트와 재혼하면서 가족 구성원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메리는 새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녀는 이복언니 제인(후에 클레어)이 교육을 받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메리에게는 정규 교육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메리는 아버지의 광범위한 도서관에서 독학하며 지적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녀는 자주 책을 읽었고,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사색을 즐겼으며,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퍼시 비시 셸리와의 사랑과 도피

 

1812, 메리는 아버지의 지인인 윌리엄 백스터의 집에서 머물며 안정적인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1814, 그녀는 아버지의 학생이자 시인이었던 퍼시 비시 셸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퍼시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메리는 의붓자매 클레어 클레어몬트와 함께 퍼시와 도망쳐 유럽을 떠돌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1815 첫 번째 아이를 출산했지만 며칠 만에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816, 그녀는 스위스에서 퍼시, 클레어, 그리고 유명한 시인 바이런 경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바로 이때 프랑켄슈타인의 아이디어가 탄생했습니다.

 

photo by b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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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의 탄생과 성공

 

비가 오는 어느 날, 메리 셸리와 동료들은 유령 이야기를 창작하는 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메리는 "죽은 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이라는 질문을 떠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1816, 그녀의 이복언니 패니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퍼시 셸리의 아내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메리와 퍼시는 1816 12월에 결혼했습니다. 1817, 그녀는 6주간의 여행기를 출간하며 유럽 여행 경험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818, 프랑켄슈타인이 익명으로 출간되었고,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퍼시 셸리가 서문을 썼다는 이유로 그가 저자라고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부부는 이탈리아로 이주했지만, 불행이 계속되었습니다. 두 명의 아이를 더 잃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퍼시 플로렌스 셸리(1819년생)만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비극적인 결말과 메리 셸리의 말년

 

1822, 퍼시 셸리는 이탈리아 스페지아만에서 항해 중 익사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고, 이후 생계를 위해 글을 쓰며 아들을 키웠습니다. 발페르가, 최후의 인간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창작을 이어갔지만, 남편의 보헤미안적 삶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시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851 2 1, 53세의 나이로 뇌종양으로 사망한 그녀는 본머스의 세인트 피터 교회에 묻혔으며, 남편의 심장 유골과 함께 안장되었습니다.

 

메리 셸리의 유산

 

메리 셸리는 고딕 문학과 초기 SF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 마틸다는 사후 100여 년이 지난 1950년대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단연 프랑켄슈타인입니다.

 

괴물과 창조자의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수많은 영화, 연극, 문학작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 대중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1994,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한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제작되었으며, 1974년에는 진 와일더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이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3년 개봉한 영화 아이, 프랑켄슈타인 등 현대적인 해석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메리 셸리는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 인간의 창조 욕망과 그로 인한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한 위대한 작가였습니다. 그녀가 남긴 문학적 유산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조명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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